기원전 5세기, 히말라야산맥 아래 샤카Śākya족의 왕자로 태어난 싯다르타는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샤카족의 깨달은 자’라는 뜻의 ‘샤카무니Śākyamuni’, 즉 ‘석가모니釋迦牟尼’라 불립니다. 석가모니는 갠지스강 남쪽 쿠시나가라에서 윤회의 굴레를 벗고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왕이나 성자의 장례를 치르듯 그의 시신을 화장하고 남은 사리를 스투파에 묻었습니다. 스투파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룸비니와 카필라바스투 등 북인도 여덟 곳의 성지에 세워졌습니다. 그로부터 약 150년 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르게 된 아소카왕이 인도 전역에 불교를 전하고자 갠지스강 유역의 스투파에서 사리를 꺼내 나눈 뒤, 8만 4천개의 스투파에 다시 모셨습니다. 전시된 사리는 네팔과 국경을 맞댄 북인도 피프라와 스투파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견된 사리 단지 안에서는 유골과 함께 금이나 진주, 꽃 모양으로 만든 보석이 섞여 있었습니다. 이는 아소카왕이 나중에 석가모니의 사리를 꺼내어 다시 나눌 때 넣은 보석으로, 사리와 똑같이 귀중하게 여겨졌습니다.